「최한솔에게.

안녕, 형이야.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은 잘 지내고 있어.」



정한은 거기까지 쓰고서 손에 힘이 풀려 헛웃음을 지었다. 성치 않은 손으로 평생 잡을 일 없을 것 같던 필기구를 잡자니 영 글씨가 시원찮았지만, 어차피 부칠 수 없을 테니 꼭 알아봐야만 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합리화 비슷한 거다. 그는 헛웃음을 지어보이고 다시금 펜을 집어들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근육에 잔뜩 힘이 들어가 손이 벌벌 떨렸다. 정한은 이를 악 물고 필사적으로 손목을 움직여 펜을 놀렸다. 경직된 글씨가 질 낮은 종이 위로 뭉치듯 퍼져나갔다.



「오늘은 무척 춥더라. 거기는 좀 덜 추울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간다는 건 아니고. 날이 추워서 따뜻한 거라도 사먹으려고 했는데 돈이 모자라더라. 그냥 집에 있으려고. 너는,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툭, 거짓말처럼 물방울이 종이 위로 떨어져내렸다. 눈물이다. 정한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웃겨서 웃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파들거리는 입술을 앞니로 눌러 깨문 그가 몇 번이고 펜을 고쳐쥐었다. 싸구려 만년필의 검정 잉크가 눈물에 번져 파란색으로, 또 빨간색으로 흩어져 내렸다. 급하게 눈두덩을 부비어 눈물을 닦는 그의 왼손에는 투박한 모양의 의수가 끼워져 있었다.



「걱정은 하지 마. 네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다 보니까…… 그러다 보니까, 살아지더라. 그래서 그냥 그런 대로 살다가… 그러다가 네 곁으로 가려고. 일찍 가지는 않을 거야, 네가 타박할 테니까.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놈한테 그런 식으로 혼나고 싶지는 않거든.

보름달이 떴어. 네 얼굴이 비치는 것도 같아. 이만 줄일게, 내일도 아침 일찍 나가봐야 하거든.


오늘, 달이 참 밝다. 보고 싶다, 한솔아.」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본 적이 없어서, 정한은 그래서 많이 후회하고 있었다. 허나 언제까지나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면서도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 저리 둘러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치장하는 것을 한솔이 더 좋아할 것이라 합리화하며, 정한은 펜을 내려놓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떨구었다. 거칠어진 오른손과 딱딱하고 온기 없는 왼손이 그새 수척해진 얼굴을 모두 가리었다. 억눌린 흐느낌은 순식간에 틈을 비집고 터져나와, 종국에 그는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그의 어깨 너머로, 파아란 달빛이 시리게 비쳐 들었다.





- 첫눈에 반한다는 말, 믿어요?
- 나 당신한테 반한 것 같은데.
- 상해, 미라보 여관. 커피가 참 맛있다고들 하던데. 거기서 다시 만나는 걸로 하죠.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 지금 당신하고 입을 좀 맞춰야 될 것 같은데.


'동지, 그거 압니까?'
'말씀하세요.'
'제국의- 아, 제국 얘기를 꺼내서 죄송하긴 한데, 꼭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들어 주시겠습니까?'
'듣고 있습니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잖습니까.'
'여하튼, 제국의 어느 소설가는 말입니다. I love you, 그 한 마디를 번역하기가 부끄러워 오늘 달이 참 밝네요-. 하고 번역했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오늘 달이 참 밝네요, 윤정한 동지.'





「1949년 2월 18일, 윤정한 씀.」


그것이 한솔에게 쓰는 열 번째 편지였으며, 그 날은 그의 서른 네 번째 생일이었다. 정한은 그럼에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하나 전하지 못하였다.

다만- 영영 부칠 수 없는 대답을 열 번째 편지에 실을 뿐이었다.








*

1933년 상하이 일대를 휩쓸고 다니던 최연소 청부업자 십팔세 최한솔.
1933년 조선 독립군 제3부대 좌포수 이십육세 윤정한.


오늘도 두 사람이 바라보는 달은 참 밝습니다.







* 리네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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