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 윤정한

 

 

 

 

 

0730, 이별 이지훈의 기록

[우정전력 :: 읽지 않은 메시지 1]

 

 

 

 

 

 

 

w. (@hyemm_is_yoonr)

 

 

 

 

 

 

 

 

 

 

 

 

 

 

 

요 즈음 형은 한동안 쓰질 않던 휴대폰의 문자 기능을 자주 사용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끝마치고 인턴을 하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짤막한 밥 때에, 그 외의 언제든 휴대폰을 들어 올리면 항상 읽지 않은 메시지 1, 이라는 글자가 잠금화면 위에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간단한 용건이라도 목소리로 전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으나, 형에게서 문자가 와 있을 때면 그저 별 수 없이 엄지를 놀려 답장을 꾹꾹 써 내려갈 뿐이었다. 형도 물론 전화를 더 좋아해서 얼마 전까지도 혼자 한 시간 씩이나 재잘재잘 제 얘기를 하고는 했다.

허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을 테지. 나는 어렴풋이 생각만 할 뿐이었다.

 

 

 

 

 

[지훈아, 오늘도 밥 잘 챙겨먹고 있지? 형은 오랜만에 학원 나왔어. 트레이너 형이랑 이것저것 얘기도 하고, 잠깐 병원도 다녀오기로 했다? 근데 있지, 그 형이 네가 있는 병원으로 가자는 거야. 원래는 비밀로 하고 몰래 너 찾아가기로 했는데 바쁠까봐, 혹시나 싶어서 말해주는 거다, 알지? 시간 괜찮으면 잠깐 얼굴 봤음 좋겠다. ;; 오늘 못 봐두 내일 보기로 했으니까 기다릴 수 있어! 답장두 기다릴게, 이지훈 파이팅!]

 

 

 

 

 

형의 문자는 늘상 이런 식이어서 나는 대화를 할 때마다 편지를 뜯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꾸역꾸역 글자 수를 넘겨 MMS로 넘어가는 게 답 텀이 느린 내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단어 하나에서 형의 목소리를 듣고, 조그만 이모티콘 하나에서 형의 표정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에 곧 사로잡힌다. 말려드는 입 꼬리를 저 하고 싶은 대로 두고서 자판 위로 양 엄지를 올렸다. 보낼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 있었다.

 

 

 

 

 

으음, 오늘은, 내가 곧, 회진 있어서, 힘들 것 같구

이지훈, 뭐 하냐? 또 문자질?”

 

 

 

 

 

자그마한 휴대폰 화면과 숙직실 벽의 절반을 채운 화이트보드달력처럼 생겨서, 일정표로 쓴다.를 번갈아보던 중, 어깨 위로 팔을 턱 걸친 전원우가 화면 위로 시선을 던지며 물어왔다. 저 새끼는 꼭 나 문자하고 있을 때만 친한 척 하더라. 얼굴을 팍 구기자 팔을 치우고 몸 사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 꼴이 웃겨, 나는 급하게 문장을 맺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책상 위로 휴대폰을 뒤집어 놓자 그제야 시선이 가셨다.

 

 

 

 

 

정한이 형이야, 잠깐 병원 들른대서.”

그래? 그럼 잠깐 내려가서 얼굴 보고 와. 너 또 거절했지, 바쁘다고.”

, 사실이잖아. 여기서 놀고먹는 것도 걸리면 아작인데, 그리고 난 이제 인턴 1년차거든요, 전원우 선배님. 너랑 나랑 같냐?”

그래도 너 요새 정한이 형 목소리도 잘 못 듣는다며. 그 형 아프다 그랬나?”

어어, 한 이 주 쯤 전에 감기 걸렸다 그래서 몰래 약 타줬는데, 잘 안 떨어지나 봐. 예민할 때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았는데, 좀 심각한가 보네.”

 

 

 

 

 

내 맞은편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고개를 주억거리는 전원우는 레지던트 6개월 차, 굳이 덧붙이자면 내 직속 선배이다. 개인 사정 상 군대를 면제받은 덕에, 내가 군 생활 하고 휴학하는 동안 인턴을 마쳤단다. 정한이 형과는 총학생회에서 만나 어째저째 아는 사이라고 했던 것 같고. 물론 인턴만 하겠냐만은 그래 봤자 정식 의사 된 지 1년도 못 채운 전원우가 자주 놀고먹는 것 같아 사실은 좀 고깝다. 그래도 형 얘기에 토 안 다는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전원우는 가운 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만년필을 습관적으로 손에 쥐고 빙글빙글 돌리며 퍽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 정한이 형 목소리 들어 보긴 했어?”

, 전에 약 타줄 때랑, 지난 주 쯤이었나, 전화하다가 목 아프다고 그래가지고 끊었을 때랑. ?”

아니 뭐, 이런 얘기는 좀 그런데 감기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싶어서.”

……뜬금없이?”

원래 사람 아픈 건 뜬금없잖아. 물론 감기가 잘 안 떨어질 수도 있기는 한데, 그 전화 좋아하는 사람이 맨날맨날 그렇게 정성스럽게 문자하는 거 보면 답 나오지 않냐고.”

 

 

 

 

 

아이, , 나야 일개 레지라서 판단은 못 내리니까 그냥 생각은 해 두라고. 형 바빠서 가 본다.

제 딴에는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게 불편했는지, 전원우는 빙빙 돌려서 어물어물 말을 맺더니 이내 숙직실을 쏙 빠져나갔다. 나는 가만히 뒤집힌 휴대폰을 들어 본다. 14 : 38. 가는 선이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휘어져 숫자를 그려낸 것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곧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밀어 넣고 몸을 일으켰다. 짧게 울리는 진동은 모른 척 했다. 사실은,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적 없어서 조금 착잡했거든.

 

 

 

 

 

나는 의과에 진학을 한 이후로부터, 전공 수업을 지겨울 만큼 들었던 시절을 지나, 인턴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항상 어떠한 딜레마에 사로잡혀 있었다. 병원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곳이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전혀 상관없는 사이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세 부류의 사람이 단란한 가족인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후자의 경우에, 누군가의 삶을 쥐고 뒤흔들 만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줄곧 고민해 왔다. 마치 내가 상대의 생명을 재단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목적 없이 휴학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 전원우는 특유의 늘어지는 투로 내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었다. 어차피 사람은 한계가 있는 거고, 우리는 그냥 그 한계를 전달해 줄 뿐이지. 나는 머리로는 그 문장을 전부 이해하면서도, 끝끝내 내 맞은편에 앉은 형을 상상하고서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원우에게 되묻길 수십 번 했었지. 네가 나라면, 정한이 형한테 그런 말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느냐고.

 

 

그 때 전원우가 뭐라고 했더라. 답지 않게 멋있는 말이어서 좀 놀려줬었는데

 

 

 

 

 

훈아,”

…….”

지훈아!”

, . 죄송합니다.”

아냐, 안 그래도 오늘 힘들었지. 갑자기 그런 일이 생겨 버려서.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퇴근해도 좋아. 수고했다.”

 

 

 

 

 

정신이 좀 팔려 있던 모양이다. 인턴 지도를 담당하시는 최 과장님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 곧 제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뾰족한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과 닿아 공명하는 소리가 점차 옅게 흩어졌다. 나는 로비에 멍하니 선 채 목적 없이 시선을 옮기다가, 곧 숙직실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은, 그래, 일주일 정도 특정 범위의 병실 회진을 돌면서 인사를 몇 번 주고받았던 환자가 갑작스런 발작으로 급히 옮겨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서 있었다. 물론 내가 개입할 일은 아니었지만, 조금, 무서웠달까. 그 사람은 아마 지금쯤, 현대 의학이 손을 뻗어준 덕으로 가는 숨이나마 내쉬고 있으려나. 목에 걸린 명찰을 빼내어 가운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뒷주머니에 꽂힌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짧고, 일정하게, 여러 번. 나한테 전화하는 사람 없는데, 중얼거리며 손을 옮겨 휴대폰을 쥐었다. 어깨로 숙직실 문을 밀어 들어가는 순간 진동이 멎었고, 액정 위에 떠 있는 몇 개의 단어. 참 낯익은데, 그만큼 낯설어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 3]

[부재중 전화 1]

 

 

 

 

 

나는 배정받은 침대 위에 몸을 던지듯이 누이고, 내 옆으로 가운을 집어던지며 부재중 전화 발신자부터 확인했다. 저장이 되어있지는 않으나 낯익은 번호, 형의 학원 트레이너일 것이다. , 나한테, 전화를? 한 음절씩 뚝뚝 끊어 중얼거리며 메시지 창을 누르고서,

 

나는 잠시 동안 손가락이 굳어, 차마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휴대폰을 허벅지 위로 떨어뜨렸다.

 

 

 

 

 

[지훈아 형 지금 병원 앞이야 벤치에 앉아있어]

[지훈 씨 바빠요? 전화 안 받으셔서 문자 남깁니다 정한이랑 방금 병원 들렀]

 

 

 

 

 

형에게서 온 문자는 두 통이었는데, 가장 최근에 온 문자가 그 전 것을 덮어 나는 다만 형이 병원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다. 그리고 트레이너에게서 온 문자는 방금 전에 막 도착한 것이었고나는 굳이 그것을 열어보지 않아도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입술을 꾹 깨물어 본다. 적어도, 이것은 꿈이 아니며, 나의 상상도 아니나, 실재 가능한 상황 중 최악이다. 휴대폰을 세게 쥔 채, 나는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숙직실을 박차고 병원 밖으로 달렸다. 두 다리를 바삐 움직이는 동안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생각은 그것이었다. 주저앉지 않아서 다행이다.

 

 

 

 

 

형은 다 낡아빠진 가로등이 깜빡거리는 아래에 앉아, 병원 로비를 하염없이 응시하면서,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 꼬리를 끌어당겼다.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공기 중에 드러난 팔 위로 꿉꿉한 감촉이 달라붙었다. 짜증이 확 솟구친다. 그럼에도, 나는 벤치에 걸터앉은 형의 어깨 위로 팔을 둘러, 할 수 있는 한 세게 형을 끌어안았다. 형은 가만히 품에 얼굴을 묻고서, 옅게 웃을 뿐이었다.

 

 

 

 

 

…….”

…….”

아무 말도 하지 마요, 제발.”

 

 

 

문자, 안 읽었지. 그럴 줄 알았어. 이십 분이나 늦고.”

 

 

 

 

 

천 따위에 입술이 반쯤 막혀 웅얼거리는 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명백하게 거친, 목이 잔뜩 긁히는 쇳소리가 음성을 타고 흐른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두워진 시야 위로 가로등 불빛의 잔상이 어지럽게 점멸한다. 형은 여전히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팔을 옮겨 가만가만 내 등을 두드리고, 성치도 않은 목소리를 자꾸만 내었다.

 

 

 

 

 

지훈아, 형이 항상 말하잖아. 너는 뭐를 해도 잘 할 거라고. 뭐를 해도, 성공할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 스스로한테 좀 관대해졌음 좋겠어. 알지?”

……,”

그리고 덥다구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자지 말구. 그러다가 감기 걸리고 냉방병 걸리는 거, 하아, 금방이니까, 몸 챙기면서 일 해.”

, 잠깐만,”

 

 

 

 

 

등을 토닥이던 형의 손이 멎는다. 곧 내 어깨를 쥐어 밀어내는 탓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눈가를 조금 찌푸린 형이, 시선을 당겨 저보다 위에 있는 나를 올려다본다. 눈가가 발간 게 누가 봐도 운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 와중에 입 꼬리가 예쁘게 말려 올라가 있어서, 나는 타의로 닫은 입술을 조금 벌려 헛웃음을 뱉었다. 곧 형이 나를 끌어당기어, 내 입술 위로 열이 오른 제 입술을 붙였다 뗀다. 보는 눈 운운하며 손잡는 것도 거절하던 그 답지 않아서, 나는 조금 울 것 같았다. 형은 입술을 반쯤 벌려 억지로 호흡을 고르고서, 몸을 일으켜 반쯤 돌아선다. 붙잡아야 하는데, 나는 머리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서도 겨우 손만 뻗은 채 황망히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덥다, 들어가서 몸 식혀, 지훈아.”

……, 잠깐만요,”

 

 

 

 

 

억지로 팔을 뻗었을 때, 손가락 끝이 형의 어깨를 스치고, 그대로 공기를 한 움큼 쥐어 갈랐다. 나는 여전히 초점이 반쯤 나간 눈으로, 멀어지는 형의 모습을 한참 담다가, 점멸하는 가로등이 완전히 꺼지고서야 등을 돌린다. 숙직실로 향하는 몸이 무겁고, 다리가 무겁고, 전하지 못한 말들이 가득 쌓인 마음이 제일 무거웠다.

 

 

 

잔뜩 구겨진 가운이 널린 침대 위로 몸을 붙여 본다. 휴대폰을 어찌나 꽉 쥐고 있었는지, 열을 받아 뜨거운 기계를 침대 위로 떨어뜨리자 손바닥에 가득 땀이 배어났다. 나는 답답하게 막힌 침대 위를 멀거니 올려다보다가, 이불을 타고 느껴지는 진동에 고개를 돌린다. 읽지 않은 메시지, 3. 그 가운데 두 건은 형이 보낸 것이고, 나는 곧 그 문자들을 지울 것이다. 방금 온 것은 발신자표시제한. 나는 겨우 고개만 옆으로 돌린 채 화면 위로 시선을 꽂고, 길게 숨을 뱉는다. 정한의 이름자 위로 검지를 갖다 대고, 길게 그 위를 눌렀다. 손이 떨려서 입술을 깨문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고 침대 위로 얼굴도 묻어 버렸다.

마지막 문자는, 영원히 읽지 않을 것이다.

 

 

 

 

 

문득 전원우가 했었던, 멋진 말이 떠올랐다.

만약 정한이 형이 아프다 치자. 내가 너면 무조건 같이 있어줄 건데? 무섭잖아,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무서워 죽겠는데, 선고 받는 당사자는 어떻겠어. 그러니까 옆에 있어 줘야지. 손도 잡아 주고, 울면 눈물도 닦아 주고.

나는 전원우의 목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동안, 눈가가 뜨거워 쉬이 잠들지 못했다.

 

 

 

이것으로 이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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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자 표시제한

 

지훈아형이랑만나줘서고마웠어더잘해주지못해서미안해형이너많이사랑]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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